본문 바로가기

종합/사회

[기획] 숭의사에 얽힌 이야기

반응형

- 충남도문화재 300호, 소주가씨 중시조

 

[기획]숭의사에 얽힌 이야기

[사회/CTN]박순신 기자 = 숭의사는 충남문화재자료 300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제다.소주가씨 중시조인 가유약 장군의 3대(아들 가상, 손자 가침)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지만 전에는 문화재로 지정

www.ctnews.kr

충남도문화재 300호 숭의사 전경/CTN 박순신 기자

[사회/CTN]박순신 기자 = 숭의사는 충남문화재자료 300호로 지정된 소중한 문화제다.

소주가씨 중시조인 가유약 장군의 3대(아들 가상, 손자 가침)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지만 전에는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에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영당'(융당)이라 불릴 정도로 신성시 되었던 곳이다.

또 임금으로부터 받은 불천지위(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은 분에 대해 신주를 사당에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이기도 하다.

이 숭의사가 현재의 모습을 갖춰지기까지는 이 사람을 빼놓을 수 없다.

숭의사가 3대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라면 숭의사를 지키고 이어가기까지는 3대의 노력과 땀 그리고 목숨과도 같은 토지의 희사가 녹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숭의사 현판/CTN 박순신 기자

숭의사는 원래 현재 위패가 모셔진 사당 건물만이 덩그러니 있었다고 한다.

이에 가동환(봉로)씨(당시 종친회 총무)가 막내아들(재남) 장가갈 밑천으로 마을에 위치했던 최고의 고택만을 구입하고, 현재 숭의사 정문 아래 토지를 영당과 붙어 있던 토지와 맞바꿔 희사 한 뒤 터를 잡고 재실 두 동을 지은 것이다.

고택만 구입한 이유는 재실을 짖기 위해 필요한 좋은 목재를 얻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재실이 지어지면서 숭의사에 제를 올리기 위해 전국에서 찾아오는 종친들은 이곳에서 숙식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리고 한때 마을에서 살 집이 없는 주민이 이곳 재실에서 살면서 숭의사를 관리하도록 했다.

가동환씨의 헌신으로 숭의사가 제모습을 갖춰지게 되었으며, 종친의 자부심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숭의사가 1988년 8월 30일 도문화재로 지정될 수 있도록 기반시설을 갖춰지도록 헌신했던 가동환씨는 그 기쁨을 누리지 못한 채 1981년 소주가씨 종친회장직을 지명 받아 놓은 상태에서 안타깝게도 회장직을 수행하기 2개월도 남겨 놓지 못한 채 동짓달에 숨을 거뒀다.

가동환씨가 종친회 총무직을 수년간 보면서 숭의사 건립에 열정과 재정까지 투입한 부분은 분명 종친발전의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이어 자신의 결혼 밑천이 숭의사 재건에 쓰여지면서 결혼이 미뤄졌던 그의 막내 아들 재남씨가 결혼 후 숭의사 아래 집으로 분가하면서 숭의사 관리는 그의 몫이 되었다.

그는 충남도로부터 숭의사 명예 관리인이라는 직책을 맡을 정도로 열성적으로 숭의사를 관리한 인물이다.

숭의사에서 매년 음력 10월 14일 진행되는 대제에서 사회를 맡아 진행하고 있는 가재남씨/사진=소주가씨종친회 제공

숭의사 주변 제초작업은 물론 청소까지 그의 손길이 안 닿는 곳이 없을 정도로 숭의사를 관리했다.

특히 명절 때마다 사당에 제물을 올리고 제를 지내는 것은 물론 대제 봉향시(당시 밤 12시 지냄) 숭의사 재실에는 젊은 종친들이 묶게 하고 연로하신 종친은 집으로 모셔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그의 부부는 모든 부분에서 종친을 위해 헌신했다.

또 재남씨은 4명의 종친회장(재설·재호·기순·덕소)의 총무직을 수행한 것으로 나타나 그가 얼마나 숭의사와 종친발전을 위해 희생했는지 알 수 있다.

그뿐인가 어느 해부터 인가 대제 봉향 후 모든 종친이 편안하게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담화를 나눌 수 있는 화합의 공간으로 자신의 집을 제공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종친을 위해 헌신했음을 알게된다.

특히 재남씨는 20여 년간 대제 봉향 시 진행을 맡아오는 등 숭의사와 종친발전에 평생을 살아온 인물이었지만 안타깝게도 2022년 대제(음력 10월 14일) 일주일 앞둔 10월 31일(음 10월 7일) 운명했다.

그리고 그의(재남) 아들 금현(현재 인터넷신문 CTN, 충청탑뉴스, 교육타임즈, CTN방송 발행인)씨는 지난 2010년부터 숭의사에 모셔진 중시조 3대가 보여준 2충1효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전국백일장 대회를 숭의사 뜰에서 개최, 숭의사와 중시조 2충1효를 전국에 전파해오고 있다.

2010년부터 숭의사 뜰에서 소주가씨 중시조 3대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가금현 CTN신문 대표이사는 2충1효 전국백일장대회를 개최했다./사진=소주가씨종친회 제공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숭의사와 종친발전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고 성장했듯 그 누구보다 열정을 갖고 참여하고 있다.

2충1효 전국백일장대회는 올해 14회째 진행했으며, 전국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회 중 하나로 손꼽힐 수 있도록 성장 발전시켜 소주가씨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놓았다.

그도 할아버지와 아버지처럼 지난해 대회(13회)까지 일부 후원금을 제외한 모든 비용은 그의 아버지 재남씨의 헌금과 그의 자비로 충당해 왔다.

그러던 중 지난 2021년 소주가씨종친회 부설 2충1효문화연구원(이사장 가갑손, 원장 가재산)을 설립하고, 올해부터 이사장과 원장을 비롯한 여러명의 이사들이 힘을 모아 백일장을 후원하고 있어 2충1효전국백일장대회는 안정적인 기반 위에 더욱 커갈 수 있을 것이며, 이로 인해 소주가씨의 뿌리이며, 핵심키워드인 2충1효의 위상은 전국적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소주가씨 중시조 가유약-가상-가침 3대로 인해 숭의사가 세워졌다면, 가동환(봉로)-가재남(선학)-가금현(현산) 3대로 인해 숭의사가 관리되고, 그 안에 담긴 정신이 전국으로 퍼지게 됐다.

대제를 마치고 종친회 임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촬영한 단체사진/사진=소주가씨종친회 제공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