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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2>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그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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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영숙 독립운동가최재형기념사업회 이사장

<2> 항일독립운동가 최재형, 그는 누구인가?
함경도 지방의 기근과 홍수
최재형은 1860년 8월 15일, 함경북도 경원에서 최홍백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원은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러시아와 국경을 이룬 곳이다. 최재형의 아버지 최홍백은 가난한 소작인이었고 어머니는 재색을 겸비한 기생이었다고 전해진다.

경원은 함경북도 최북단으로 세종 때 여진족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김종서를 파견하였던 회령, 부령, 종성, 온성, 경흥과 함께 6진 중에 한 곳이었다.

바다와 맞닿아 있어 연해주라 불리는 러시아 땅은 당시 시베리아 동쪽에 있는 죄수들의 유형지로 대부분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었다.

그 땅은 바로 고구려와 발해의 옛땅이었다.

최재형이 태어날 무렵부터 함경도 지방에는 기근이 심했다.

국경지대에 사는 사람들은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연해주에 가서 계절농사를 지었다.

계절농사는 이른 봄에 두만강을 건너가서 밭을 일궈 농사를 지어 가을이 되면 거둬 고향으로 돌아와 농사지은 식량으로 겨울을 나고, 이듬해 봄이 되면 다시 농사를 짓기 위해 두만강을 건넜다.

그러나 두만강을 건너다 국경을 지키는 관원들에게 발각이 되면 그 자리에서 목이 잘렸고, 관원들은 그 목을 강변에 매달아 놓고 월경을 막았다고 한다.

하지만 극심한 기근과 양반들의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은 강을 건너다 죽으나, 굶어 죽으나, 죽기는 매한가지라는 절박함으로, 하나 둘씩 강을 건너 낯선 땅 러시아 연해주로 살길을 찾아 떠나갔다.

최재형이 아홉 살 되던 해에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늦은 봄부터 난데없이 흙비가 내렸다.

심심산골 골짜기마다 층층으로 일구어 만든 손바닥 만 한 밭에도 흙비가 내려 마른 먼지만 풀썩풀썩 날렸다. 백성들은 임금을 원망했고, 임금은 하늘을 원망했다. 도처에서 기우제를 지냈으나 모두 허사였다.

여름 내내 데일 듯 뜨겁게 내리쬐던 해가 칠석을 앞둔 어느 날, 낮인지 밤인지 모를 정도로 천지가 캄캄하더니 드디어 천둥과 번개가 세상을 뒤흔들었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장대비를 쏟아부었다.

딱딱하게 마른 땅에 폭포처럼 내리는 비는 홍수로 변해 물길과 가까운 집이 떠내려가고, 산사태까지 나서 멀쩡하던 동네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굶주림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던 소작인들은 일찍이 겪어보지도 못했던 대홍수로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 신세가 되었다. 물길에 휩쓸려 죽은 사람도 부지기수였고, 세간마저 떠내려가서 살길이 막막했다.
남도지방에는 호열자(장티푸스)가 발생했다. 호열자는 불길처럼 번져 유령마을이 생긴다는 소문도 들렸다. 호열자가 되면 고열에 들떠 헛소리를 하다가 설사와 토사를 반복하다 죽어갔다.

최재형의 가족도 두만강을 건너다
몰래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 땅으로 간 사람들이 연해주 지신허라는 마을에 터를 잡고 잘 산다는 소문이 들렸다.

최재형의 아버지 최홍백도 두 아들과 늙은 부친을 모시고 두만강을 건너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최홍백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우리도 두만강을 건너 러시아로 가야겠다."

두 아들이 움푹 패인 눈을 껌뻑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버지, 만약 강을 건너다 발각되면 그 자리에서 목이 잘린대요."

주름진 최홍백의 얼굴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어. 굶어죽는 사람들이 날마다 늘어간다. 게다가 호열자까지 돌고 있어. 병약하신 할아버지가 더 걱정이다. 우리도 언제 길바닥에 쓰러질지 몰라.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사흘 후에 강을 건넌다. 사람들 눈치채지 못하게 어서 짐을 꾸려라."

최홍백은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낫과 호미, 삽과 괭이는 물론, 밭을 갈 때 쓰는 보습까지 챙겼다. 호열자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빈자리를 대신해서 두 아들이 부엌살림과 살림살이를 챙겼다.

사흘은 금세 지나갔다. 재형은 아버지와 함께 어머니 산소를 마지막으로 찾았다.

최홍백은 아내의 무덤에 마지막으로 절을 올리는 두 아들을 재촉하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와 부친을 부축했다.

"아버지, 어서 떠나야 해요."
최홍백의 재촉에 재형의 할아버지가 지팡이를 챙겨들었다. 아홉 살이 된 재형은 낯선 땅으로 간다는 호기심보다 두려움이 더 컸다. 두만강을 건너다 관원에게 발각되면 목이 잘린다는 소문이 더 무서웠다. 최홍백은 가족들을 데리고 큰 길을 피해 으슥한 산길로 하루 종일 걸었다.

드디어 두만강 가에 다다랐다. 강물은 홍수 뒤끝이라 흙탕물이었다. 최홍백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후미진 곳에서 짐을 내려놓고 가장 강물이 얕은 곳을 찾아 숨을 골랐다.

"우린 이제 강을 건너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저 강을 건너면 내 땅을 가질 수 있어. 우리 밭을 일구고, 우리 집을 짓고, 우리도 주인이 될 수 있다."

땀에 젖은 최홍백의 얼굴에 툭 불거진 광대뼈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할아버지의 흐트러진 상투는 석양빛을 받아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자, 어서 나를 따라 와라."
재형은 비교적 가벼운 옷 보퉁이를 등에 지고 아버지의 뒤를 바짝 뒤쫓았다.
커다란 장대로 강물의 깊이를 가늠하며 재형의 아버지 최홍백이 먼저 강물 속으로 저벅 저벅 발길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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